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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의 꼽추가 알려주지 않은 중세 파리의 충격적인 일상

by 함께걷는길 2025.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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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의 꼽추가 알려주지 않은 중세 파리의 충격적인 일상

노트르담의 꼽추가 알려주지 않은 중세 파리의 충격적인 일상

중세 파리 전경 13-15세기 파리의 모습

중세 파리의 도시 경관

서론: 낭만화된 중세 파리의 이면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중세 파리의 이미지를 심어주었습니다. 웅장한 대성당, 화려한 축제, 그리고 카지모도와 에스메랄다의 가슴 아픈 이야기. 하지만 실제 13-15세기 파리의 일상은 소설이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더 혹독하고 충격적이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낭만적 소설과 영화에서 다루지 않은 중세 파리의 실제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귀족과 성직자들의 화려한 삶 뒤에 숨겨진 일반 시민들의 고단한 현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이 직면했던 충격적인 일상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1. 거리의 악취와 불결함: 중세 파리의 위생 문제

중세 파리의 좁은 거리

중세 파리의 좁고 불결한 거리

중세 파리의 거리는 현대인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결했습니다. 하수도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당시, 사람들은 창문으로 모든 종류의 쓰레기와 배설물을 그대로 거리에 던졌습니다. "가드 루(Gardez l'eau, 물조심!)"라는 외침은 위에서 오물이 쏟아질 것을 알리는 일상적인 경고였습니다.

거리의 불결함 원인

  • 하수 시스템 부재: 체계적인 하수도가 없어 모든 오물이 거리에 쌓임
  • 가축과의 공존: 돼지, 닭, 소 등의 가축이 도시 안에서 함께 생활
  • 쓰레기 처리 문제: 쓰레기 수거 체계가 없어 거리에 무단 투기

거리는 진흙, 오물, 동물 배설물, 음식 찌꺼기로 뒤덮여 있었고, 비가 내리면 이 모든 것이 섞여 도시 전체가 악취로 가득했습니다. 중세 파리인들은 이러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이 일상이었기에, 당시 사람들의 후각은 현대인보다 훨씬 둔감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중세 파리는 눈을 즐겁게 했을지 모르나, 코는 고문받았다." - 중세 역사학자

2. 세느강: 쓰레기장이자 생명줄

중세 세느강 풍경

생명의 원천이자 쓰레기장이었던 세느강

파리의 심장부를 가로지르는 세느강은 도시의 생명줄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큰 쓰레기장이기도 했습니다. 강물은 식수원이자 운송로였지만, 동시에 모든 종류의 쓰레기와 폐기물이 버려지는 곳이었습니다.

세느강의 이중적 역할

긍정적 역할 부정적 역할
식수원 쓰레기 투기장
물고기 공급 시체 처리 장소
운송 경로 질병 전파 경로
세탁 장소 독성 폐기물 처리장

특히 도살장, 피혁 공장, 염색 공장에서 나오는 화학 폐기물과 동물 내장 등이 그대로 강에 버려졌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파리지앵들은 이 강물을 그대로 마시거나 요리에 사용했습니다. 수질 오염과 세균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3. 죽음과 질병의 그림자

흑사병 시대의 파리

흑사병이 휩쓸고 간 중세 파리의 공포

중세 파리에서 죽음은 일상의 일부였습니다. 평균 수명은 30-40세에 불과했으며, 영아 사망률은 오늘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습니다.

주요 사망 원인

  1. 전염병: 흑사병, 천연두, 콜레라 등
  2. 기아와 영양실조: 주기적인 기근으로 인한 사망
  3. 출산 합병증: 여성의 주요 사망 원인
  4. 폭력과 사고: 범죄, 화재, 건물 붕괴 등
  5. 비위생적 의료 행위: 치료 과정에서의 감염

특히 14세기 중반에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페스트)은 파리 인구의 약 1/3을 앗아갔습니다. 이 시기 파리의 거리에는 "죽은 자를 가져가시오(Bring out your dead)"라는 외침과 함께 시체 수레가 다니는 것이 일상적인 광경이었습니다.

중세 파리 사망률 통계 (추정) - 영아 사망률: 30-50% - 5세 이전 사망률: 40-60% - 성인 여성 출산 관련 사망률: 약 10-15% - 흑사병 시기 사망률: 도시 인구의 30-40%

4. 범죄와 형벌: 잔인한 일상

중세 파리의 공개 처형

공개 처형은 파리 시민들의 오락거리였다

중세 파리는 범죄의 온상이었습니다. 좁고 어두운 거리, 경찰력의 부재, 극심한 빈부 격차가 범죄 발생의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일반적인 범죄 유형

  • 소매치기와 강도: 붐비는 시장과 좁은 골목에서 빈번히 발생
  • 살인: 현대에 비해 훨씬 흔했던 폭력 범죄
  • 위조: 화폐와 상품의 위조가 만연
  • 매춘: 합법이었으나 특정 구역으로 제한됨

그러나 더 충격적인 것은 당시의 형벌 체계였습니다. 공개 처형은 일종의 공공 오락이었으며,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 처형을 구경하러 갔습니다.

중세 파리의 주요 형벌 방식

중세 파리의 형벌 방식 교수형 화형 차륜형

중세 파리에서 흔히 사용된 형벌 방식과 해당 범죄

  • 교수형: 가장 흔한 처형 방식
  • 화형: 주로 이단자와 마녀로 고발된 이들에게 적용
  • 차륜형: 범죄자의 팔다리를 바퀴에 묶어 부러뜨리는 잔인한 처형법
  • 능지처참: 극악한 범죄자에게 적용된 잔혹한 사형
  • 기둥형: 경범죄자를 공개적으로 조롱하고 괴롭히는 형벌

그레브 광장(현재의 시청 광장)은 파리의 주요 처형장이었으며, 처형은 축제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간식을 먹으며 처형을 구경했고, 처형자의 물건은 행운의 부적으로 여겨졌습니다.

5. 계급 사회: 누구나 자신의 자리가 있었다

왕족/귀족 성직자/기사 상인/장인 농노/하인/거지

중세 파리의 엄격한 계급 구조

중세 파리는 엄격한 계급 사회였습니다. 개인의 신분은 태어날 때 결정되었으며, 계급 상승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파리 사회의 계층 구조

중세 파리의 사회 계층 (상위에서 하위 순) 1. 왕족과 고위 귀족 2. 성직자 (주교, 사제 등) 3. 하위 귀족과 기사 4. 부유한 상인과 대학자 5. 장인과 숙련 노동자 6. 일반 시민과 비숙련 노동자 7. 농노와 하인 8. 부랑자, 거지, 창녀

각 계층은 복장, 거주지, 심지어 법적 권리까지 다르게 적용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귀족은 특정 색상의 옷을 입을 독점적 권리가 있었고, 평민들은 값비싼 천이나 화려한 색상의 옷을 입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이러한 신분 차이는 법적으로도 명확했습니다. 동일한 범죄를 저질러도 귀족은 벌금형이나 가벼운 처벌을 받는 반면, 평민은 신체형이나 사형을 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6. 식생활: 굶주림과 기이한 요리법

중세 파리의 식사

중세 시대의 빈약하고 단조로운 식사

중세 파리인들의 식생활은 계층에 따라 극명하게 달랐습니다. 귀족들은 풍요로운 식탁을 누렸지만, 일반 시민들은 단조롭고 영양가 낮은 식사를 했습니다.

일반 시민의 주요 식품

식품 설명
주식이었으나 품질이 낮고 종종 불순물 포함
콩류 단백질의 주요 공급원
양파, 양배추 가장 흔한 채소류
맥주 물보다 안전한 음료로 여겨짐
포리지 곡물을 끓인 죽 형태의 음식

중세 파리에서는 식량 보존이 큰 문제였습니다. 냉장 기술이 없었던 시대에 식품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사용되었습니다:

  • 강한 향신료 사용: 부패한 맛을 가리기 위함
  • 소금에 절이기: 주로 고기와 생선 보존에 사용
  • 굴뚝에 훈제: 고기를 오래 보존하는 방법
  • 발효: 채소와 유제품 보존에 활용

이런 방법에도 불구하고 식중독은 흔했으며, 부패한 음식으로 인한 질병이 만연했습니다.

또한 기근은 주기적으로 찾아왔습니다. 기후 변화, 전쟁, 흉작이 발생하면 도시 전체가 굶주림에 시달렸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시체를 먹는 식인 행위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7. 노트르담 대성당: 화려함 뒤의 이야기

노트르담 대성당 건설

약 200년에 걸쳐 완성된 노트르담 대성당

노트르담 대성당은 중세 파리의 상징이자 종교적 중심이었습니다. 1163년에 착공하여 거의 200년에 걸쳐 완성된 이 건축물 뒤에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숨겨진 사실들

  • 강제 노동: 대성당 건설에는 많은 강제 노동이 동원됨
  • 높은 사망률: 건설 과정에서 수백 명의 노동자가 사망
  • 부패한 면죄부 판매: 성직자들이 대성당 기금 마련을 위해 면죄부를 판매
  • 정치적 계산: 종교적 목적 외에도 파리의 권력과 부를 과시하기 위한 건축물

대성당 내부는 종교 의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세속적 활동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중세 시대의 노트르담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엄숙한 종교 공간과는 달랐습니다. 사람들은 내부에서 거래를 하고, 수다를 떨고, 심지어 애완동물을 데리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특히 '어리석은 축제(Feast of Fools)'는 성당 내에서 벌어진 가장 충격적인 행사였습니다. 이 축제 동안 하위 성직자들이 주교 역할을 하고, 거꾸로 된 미사를 진행하며, 성스러운 의식을 조롱하는 활동이 허용되었습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건축 구조와 일상적 사용 공간을 보여주는 단면도

결론: 역사의 현실과 우리의 인식

중세 파리의 실상은 영화나 소설이 보여주는 낭만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멉니다. 불결, 질병, 폭력, 굶주림이 일상이었던 중세 파리는 오히려 우리에게 역사의 진실을 마주하고, 인간의 생존력과 적응력을 생각해보게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노트르담과 같은 위대한 건축물이 탄생했고, 파리 대학에서는 학문이 발전했으며, 다양한 예술과 문화가 꽃피웠다는 점은 놀라운 일입니다. 중세 파리의 충격적인 일상은 결코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막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문제들을 생각할 때, 중세 파리의 현실은 인류가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이자, 앞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상기시키는 역사적 교훈입니다.

노트르담의 꼽추가 알려주지 않은 중세 파리의 충격적인 일상 거리의 악취와 불결함 "가드 루(물조심)!" 외치며 창밖으로 오물 투기 세느강: 쓰레기장이자 생명줄 식수원이자 동시에 모든 쓰레기의 종착지 죽음과 질병의 그림자 흑사병으로 인구의 30%가 사망 평균 수명 30-40세 범죄와 형벌: 잔인한 일상 공개 처형은 오락거리 그레브 광장의 일상적 광경 계급 사회: 자리가 정해진 세상 왕족/귀족 성직자/기사 상인/장인 농노/하인/거지 신분에 따라 옷, 음식, 법적 권리까지 모두 다르게 적용 식생활: 굶주림과 기이한 요리법 부패한 맛을 가리기 위해 강한 향신료 사용 노트르담 대성당은 화려했지만, 파리지앵의 일상은 충격적이었다

참고 문헌

  • 르 고프, 자크. 『중세인의 일상생활』. 2000.
  • 모리스, 데잔. 『중세 파리의 사회와 문화』. 1995.
  • 블로크, 마크. 『봉건 사회』. 1989.
  • 위고, 빅토르. 『노트르담의 꼽추』. 1831.
  • 메리맨, 존. 『중세 유럽의 법과 질서』. 2010.

키워드

중세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중세 위생, 흑사병, 중세 형벌, 중세 계급 사회, 중세 식생활, 중세 일상생활, 중세 범죄, 세느강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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